서울공예박물관, 대한제국 황실 의례용 공예품 '은제이화문합'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예고

  • 등록 2021.09.06 12: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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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이 설립‧운영한 ‘한성미술제작소’ 제작… 서울공예박물관 상설전시로 관람

 

[ 뉴스패치 ] 대한제국 황실 전용 공예품 전문 제작기관으로 최초 설립한 ‘한성미술품제작소’(1908~1913)에서 만든 의례용 공예품 ‘은제이화문합’(銀製李花紋盒)이 6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된다. 문화재청을 통해 한 달간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등록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은제이화문합’은 서울공예박물관(종로구 율곡로3길 4)에 소장 중인 문화재로 상설전시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중 ‘대한제국의 공예’(전시1동 2층)를 통해 시민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은제이화문합’은 은으로 만든 뚜껑이 있는 발(鉢)로 음식을 담을 수 있는 탕기(湯器)의 일종이다. 높이 12.4cm, 지름 18.2cm로 1908~191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상용 그릇이 아닌 대한제국 황실의 행사나 의례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서울시는 ①조선왕실 의례용 공예품의 의장(意匠)을 계승했다는 점 ②당시 해외 신기술인 프레스(Press) 기법을 도입해 만든 최초의 사례라는 점 ③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문장인 이화문 장식으로 공예가 맥을 계속 이어나갔음을 보여주는 문화재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첫째, ‘은제이화문합’은 대한제국 황실이 설립‧운영한 ‘한성미술품제작소’에서 만든 공예품이다. 당시 매일신보 기사(1911.2.23.)에 따르면 대한제국은 ‘조선의 고유한 전통적 공예미술의 계승과 진작을 위해 제조법은 개량할지라도 의장(意匠)은 모두 조선식으로 할 것’이라는 취지로 한성미술품제작소를 설립했다.


‘은제이화문합’의 바닥면에는 ‘한성미술(漢城美術)’이라는 상표가 새겨져 있어 제작처와 제작시기를 규명할 수 있다. ‘은제이화문합’ 외에 국내에 현존하는 ‘한성미술’ 제작 공예품은 5점에 불과해 희소가치도 높다.


국내에 현존하는 한성미술품제작소 제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1점(‘은제한미명초두’),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3점(‘한성미술명발’, ‘한미명이화문잔대’, ‘한미명이화문잔’), 충남역사박물관 기탁보관 1점(‘한미명이화형잔탁’) 등 총 5점에 지나지 않는다. 국외에는 일본 학습원 대학에 소장품이 있다고 전해진다.


서울공예박물관은 대한제국 황실이 세계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조선왕실 공예품의 형태‧장식을 계승함으로써 정통성 확립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둘째, ‘은제이화문합’은 오늘날 그릇 제작에도 사용하는 프레스(Press) 기법을 도입해 만든 최초의 사례로도 주목된다. 프레스 기법은 공예품의 형틀을 만든 뒤 강한 압력으로 금속판을 눌러 형태를 만들었다.


해외의 선진적인 제작기술을 반영, 황실 공예품을 질적으로 향상시켜 제국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전통공예가 근대적인 방식으로 전환되는 시대적 특징도 엿볼 수 있다.


셋째, ‘은제이화문합’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공예가 계속 맥을 이어나갔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 깊다. 한성미술품제작소의 후신인 ‘이왕직미술품제작소’(1911~1922)에서 제작한 ‘은제이화문탕기’(국가등록문화재 제452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와 비교해보면 ‘은제이화문합’과 형태‧문양구성 등이 유사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가 공고해짐에 따라 대한제국 황실에서 운영한 ‘한성미술품제작소’는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조선미술품제작소’ 등으로 점차 민영화된다. 이왕직미술품제작소는 한성미술품제작소가 내홍을 겪으면서 새로 개편된 공예제작 공장으로 1922년까지 운영됐다.


‘은제이화문합’은 뚜껑 중앙에 연꽃봉오리 모양의 꼭지가 달려있고 꼭지를 중심으로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이화문장)이 화려하게 양각돼 있다. 뚜껑 측면에는 ‘만수무강(萬壽無疆)’이 고전적인 전서체로 도금돼 장식되어 있다. 문자와 문자 사이에는 도교 사상을 담은 칠보문양이 새겨져 있다. 동체에는 글자 ‘길상여의(吉祥如意)’를 전서체로 넣었다.


‘은제이화문합’이 대한제국 황실에서 신기술인 프레스 기법을 의욕적으로 도입해 제작한 것과 달리 ‘은제이화문탕기’는 전통방식으로 회귀, 단조기법으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공예사적 변화도 찾아 볼 수 있다.


‘은제이화문합’은 근대 공예제작기술과 산업화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례로 우리나라 금속공예 역사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데 학술적으로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재은 기자 shinpress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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