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삶과 애환 담은 황재형 화백 별세
한국인의 땀과 살, 주름을 그려낸 ‘광부 화가’ 황재형 씨가 74세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중앙대 회화과 재학 중이던 1981년 황지 탄광 매몰 사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황지 330’을 통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강원도 태백 탄광촌으로 이주하여 광부로서의 삶을 경험하고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는 1980년대 사회에 대한 깊은 절망감을 느끼고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 탄광으로 향했다고 밝혔다. “1980년대 사회나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너무 깊었다.…서울에서는 밤낮 술만 먹으면 세상 뒤집어지는 이야기를 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4∙19 세대들의 변절도 봤다. 가장 뜨거운 진실은 현장에 있다고 하니 그것을 찾겠다고 직접 호랑이 굴에 갔다.”라고 고인은 회상했다.
태백에서 직접 광부로 일하며 갱도 안에서 경험한 삶의 무게를 그림에 담아냈다. ‘식사’, ‘광부초상’ 등의 작품은 땀과 눈물로 얼룩진 광부들의 고된 노동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경림 시인은 그의 작품에 대해 “황재형은 목에 힘을 주고 광부들을 지도하겠다고 설치는 화가가 아니라 그들 속에 들어가 삶의 진실을 배워 화폭에 옮겨 놓는 화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탄광뿐 아니라 ‘백두대간’, ‘작은 탄천의 노을’, ‘두문동 고갯길’ 등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며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했다. 20여 년간 이어진 ‘백두대간’ 연작은 해저에서 솟아오른 카르스트 지형의 역동적인 생명력을 담아내고자 한 그의 예술적 열정을 보여준다. “해저에서부터 지각 변동을 타고 솟아 나온 카르스트 지형, 이것이야말로 역동적으로 끌어올려지는 용솟음”이라며 “그 생명력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세상은 그를 열악한 탄광 노동의 현실을 고발한 ‘광부 화가’로 기억했지만, 그는 세상 어디든 희망 없는 곳이 ‘막장’이라고 말하며 광부의 삶은 서울이나 부산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존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자아를 실현하지 못하고 일상에 매몰되어 본성을 잃어버린 현대인이야말로 진정한 광부라고 말하며, 그림을 통해 그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자 했다.
그는 2016년 ‘제1회 박수근 미술상’을 수상했으며, 202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 ‘회천’을 개최했다. 유족 측은 “황재형 화백은 1984년 첫 개인전 이후 40여 년간 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던 사람들, 노동하는 인간의 실존을 화폭에 담았다”라며 “질기디 질긴 고무를 씹는 것과 같았던 작업의 여정이 이제 마침표를 찍었다”라고 밝혔다.
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3월 1일 오전 7시 40분에 진행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