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인력 구조조정 배경: 정년 연장, 4.5일제, 임금피크제 리스크
시중은행들이 만 40세까지 희망퇴직 대상자를 확대하는 것은 단순히 인력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향후 수십 년간 짊어져야 할 고정 비용을 선제적으로 청산하려는 경영전략의 일환이다. 임금피크제 리스크와 정년 연장 논의 등 인건비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가 이러한 결정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입법을 논의하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웃도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로 늦춰지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다. 60세가 정년인 지금 퇴직 후 5년간의 소득 공백을 메우려면 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가 존재한다.
기업들은 정년이 늘어나면 인건비가 증가하여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토로한다. 은행원이 60세 정년까지 근무를 지속한다고 가정하면 40세 행원의 경우 은행이 감당해야 하는 잠재적 인건비는 25억~30억원, 55세 행원의 경우 5억~7억원 수준으로 어림 계산할 수 있다. 늘어나는 법정 퇴직금과 복리후생비용은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면 희망퇴직을 통해 조기 퇴직을 유도하면 1인당 특별퇴직금 3억~5억원 수준만 지출하면 된다. 수조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시중은행들이 만 40세 행원까지 포함해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것은 단순한 인력 감축이 아니라는 의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의 65세 법정 정년 연장 추진에 대해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만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은행권에서 불고 있는 주 4.5일제 도입 요구도 인력 감축의 명분으로 작용한다. 보통 근무시간이 줄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경영진은 임금 수준이 높은 고연차 행원을 정리하고 신규 직원을 뽑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는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곧 노동 비용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55~59세 고령 근로자 1명이 늘어날 때 23~27세 청년 근로자는 0.4~1.5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의 경우 정년이 연장되면 임직원에 대한 임금과 복리후생비, 법정 퇴직금 등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청년 신규 채용 문이 좁아질 수 있다.
인력이 부족해지는 분야에서 사람을 추가로 뽑는 대신 인공지능 서비스와 자동화로 대체하려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일반 행원이 담당했던 단순 상담, 대출 심사, 카드 발급 등 단순 업무를 AI 에이전트가 대신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임금피크제 리스크 또한 희망퇴직을 확대 진행하는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나이부터 임금을 적게 받는 대신 정년을 늘려 회사에서 더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기업은 비용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숙련된 인력을 더 오래 고용할 수 있고, 노동자는 은퇴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이 잇따르고 감축한 임금을 노동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도 나오면서 도입했던 기업에서 비용 부담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실제 2024년 2월 남부지법은 KB국민은행 전현직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및 퇴직금 소송에서 임금피크제 무효를 주장했던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일부에서는 은행권의 희망퇴직에 대해 윈윈 성격이 있다고 해석한다. 파격적인 보상이 나오기 때문에 일부 행원들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종잣돈 마련 기회로 보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만약 은행 실적이 나빠지거나 정년 연장 법안이 통과돼 고용 유연성이 떨어지면 현재처럼 수억원의 위로금을 줄 명분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숙련 인력들의 경우 임금피크제를 겪으며 단순 업무를 하는 굴욕을 겪기보다는 명예로운 퇴진을 고민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 55세를 전후로 임금피크제에 진입하면 급여가 급격히 줄고 후배의 지시를 받거나 한직으로 물러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5년 가까운 시간을 버티는 것보다 수년치 연봉을 일시에 받고 떠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득이라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