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미국 반도체 공급망 재편…일론 머스크 테라팹과 애플-인텔 협력 심화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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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심의 반도체 제조 공급망 재편이 글로벌 정보기술 업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해 최첨단 반도체 자체 생산을 공식화하며 기존 파운드리 시장 구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는 애플마저 오랜 침체를 겪던 인텔 파운드리와 손을 잡으며 제조 자립을 향한 미국의 국가적 열망이 실질적인 기업 간 계약으로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막대한 자본력과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행정적 지원을 등에 업고 파운드리 시장의 굳건한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들의 파격적인 행보와 그 파장을 심도 있게 살펴본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가 테슬라와 손잡고 텍사스주에 차세대 반도체 제조 시설인 테라팹을 구축한다는 소식이 반도체 업계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프로젝트 진행 단계에 따라 총 투자 규모는 최대 162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며 이는 단일 반도체 제조 시설 투자로는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엄청난 규모다.

 

일론 머스크는 기존 반도체 산업의 발전 속도가 자신의 혁신 속도를 전혀 따라오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필요한 최첨단 칩을 적기에 얻기 위해 반도체 자급자족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거듭 강조했다. 

 

제조 시설은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그리고 우주 프로젝트에 필수적인 2㎚ 최첨단 칩을 연간 1테라와트 규모의 컴퓨팅 파워를 지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산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스페이스X와 테슬라는 도쿄일렉트론, 램리서치 등 글로벌 핵심 반도체 장비 업체들과 구체적인 장비 견적 및 납기 일정을 긴밀하게 논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인텔과도 협력해 텍사스 현지에 30억달러 규모의 공동 연구 시설을 구축하기로 합의하며 생산 기술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약 102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위한 기업공개 절차도 착실히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 후 기업 가치가 27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되는 스페이스X의 사상 최대 규모 기업공개와 연계된 이번 테라팹 투자는 단순한 부품 내재화를 뛰어넘는 원대한 전략을 품고 있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그리고 우주 산업을 모두 아우르는 일론 머스크표 수직 계열화의 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험이 전무한 초미세 공정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2028년 양산이라는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빠르게 수율을 확보하고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지가 향후 프로젝트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애플과 인텔의 극적인 예비 합의가 이목을 끌었다. 애플은 아이폰과 맥 등 자사 핵심 기기에 탑재될 반도체의 일부를 인텔 파운드리에서 위탁 생산하기로 합의하며 미국 반도체 제조 공급망의 대대적인 부활을 예고했다. 지난 1년 넘게 집중적인 물밑 협상을 이어온 양사는 최근 공식적인 거래 안을 확정하며 글로벌 파운드리 지형에 파장을 예고한다.

 

이번 합의 이면에는 대만 TSMC에 대한 극심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애플의 현실적인 전략과 파운드리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인텔의 절박한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역량 강화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은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과 지원이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수행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년 동안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과 잇따라 접촉하며 인텔 파운드리 이용을 권고했다.

 

그 결과 인텔은 엔비디아와 스페이스X에 이어 글로벌 정보기술 시장의 최대 큰손인 애플까지 고객사로 맞이하며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애플 입장에서도 이번 인텔과의 합의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결정에 가깝다. 인공지능 칩 설계사들로 TSMC의 최선단 생산 용량이 심각하게 쏠리면서 첨단 칩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해 아이폰과 맥의 시장 수요를 온전히 맞추지 못하는 병목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독자적인 칩 설계 역량은 그대로 유지하되 제조 기반을 인텔의 미국 현지 공장으로 분산하는 실리적인 동맹을 맺음으로써 장기적인 공급망 안정화를 도모한다. 

 

인텔이 TSMC 수준의 안정적인 수율과 압도적인 칩 성능을 차질 없이 제공할 수 있을지가 파운드리 시장의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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