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91세의 연기 열정... 한국 대중문화사에 길이 남을 배우

배우 이순재가 향년 91세로 별세하며 한국 대중문화계에 큰 슬픔이 깃들었다. 그는 69년 동안 연기 활동을 펼치며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연극에 출연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 역할을 맡아 큰 인기를 얻었으며, 최근에는 시트콤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며 젊은 세대에게도 친숙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순재는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로 이주했다. 그는 호적상으로는 1935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34년생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한 그는 대학 시절 영화 감상에 빠지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특히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영화 '햄릿'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이순재는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가 되면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나도 인간이 되련다',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삼김시대',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140편이 넘는 드라마에 출연하며 꾸준히 활동했다. 특히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역할을 맡아 시청률 65%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사극에도 자주 출연하며 '사모곡', '인목대비', '상노', '풍운', '독립문', '허준', '상도', '이산' 등 많은 작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순재는 연기자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70대 들어 출연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젊은 세대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의욕 넘치는 모습으로 나이를 잊은 열정을 보여주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연극 무대로 돌아온 이순재는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등 다양한 작품에서 열연을 펼쳤다. 특히 '리어왕'에서는 200분 공연의 방대한 대사량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찬사를 받았다. 그는 2023년에는 연출자로도 데뷔하며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를 후배 배우들과 함께 대극장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이순재는 한평생을 연기에 바쳐왔지만, 잠시 정치권에 몸담기도 했다. 그는 19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중랑갑 선거구에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연기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도 꾸준히 관심을 가졌으며, 최근까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연기 열정과 헌신은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