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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ON] 아흔, 나에게 쓰는 편지...역사의 풍파 속에 미뤄둔 ‘글자’와의 만남

홍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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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ON / 사진제공=kbs

새벽 5시 이전, 부산의 한 평생학습기관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친 96세 오상호 씨와 91세 박춘화 씨가 하루를 시작한다. 이들은 졸업 이후에도 매일 책상 앞에 앉아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글씨를 반복해서 적고, 기억을 더듬으며 문장을 완성하는 과정은 이들의 일상이 되었다.

 

오상호 씨는 80대와 90대의 인지 능력 차이를 체감한다고 전했다. 오 씨는 “80대 때는 무언가를 배우면 기억에 남았지만, 90대에 들어서니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학업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에 대해 오상호 씨는 “배워서 무엇 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면 속상하다”며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배우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배움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정신적 버팀목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과거 가난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동생들을 돌보느라 교육의 기회를 놓쳤던 오상호 씨와,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박춘화 씨에게 배움은 평생의 숙원이었다. 전쟁과 피난, 육아로 인해 미뤄두었던 학습을 뒤늦게 시작하면서 이들은 버스 정류장 안내판을 읽고 키오스크를 조작하는 등 일상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두 사람은 글을 깨친 뒤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고무공장에서 일하던 14세의 상호와 만주에서 좁쌀죽을 끓이던 7세의 춘화에게 건네는 위로는, 지난 삶의 회한을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배움의 본질과 인간의 학습 의지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다큐ON - 아흔, 나에게 쓰는 편지’는 오는 2026년 4월 4일 토요일 밤 10시 15분 KBS 1TV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제작진은 두 할머니의 삶을 통해 인간이 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려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홍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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