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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넘어선 '허수아비', 진범追적 넘어선 현실 재구성

홍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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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1991년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ENA 드라마 '허수아비'가 단순한 범죄 추적을 넘어, 30년 전 사건의 진실과 그 이후의 사회적 파장을 현실적으로 재구성하며 시청자들의 몰입을 높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진범 이춘재가 검거된 후 처음으로 이 사건을 다루면서, 미해결 사건의 종결 이후 드러난 진실과 그 이면에 숨겨진 고통을 조명한다. 특히 형사 강태주와 검사 차시영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드라마의 깊이를 더한다.

 

드라마는 23년 전 영화 '살인의 추억'이 범인을 추적하는 데 집중했다면, '허수아비'는 이춘재 검거 이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살인의 추억'이 범인을 잡지 못한 시대의 절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면, '허수아비'는 진범을 확인하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스토리를 현실에만 맡기지 않고,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극적 재미를 더한다.

 

실제 사건에서 경찰이 범인을 압박하고자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라는 문구를 써 사건 현장에 세웠던 허수아비는 드라마에서 여성을 위협하는 섬뜩한 공포의 이미지로 바뀐다. 

 

또한 등장인물 모두에게 의심을 심고 불안을 확장해가는 방식은 실화의 무게를 돌파하며 수사물의 쾌감을 안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연쇄살인범의 실체에 관해 퍼즐을 맞추듯 구성한 사건이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면서 펼쳐져 훨씬 핍진성 있게 흥미롭다”고 평가한다.

 

드라마는 단순한 범죄 수사물에 그치지 않고, 형사 강태주와 검사 차시영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층적인 서사를 쌓아간다. 두 사람은 한때 둘도 없는 친구였으나, 가정사로 인해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된 사이로 그려진다. 

 

증오하던 차시영과 손을 잡아야 하는 강태주의 딜레마는 극 초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드라마는 강태주의 친한 친구이자 다른 이름으로 살았던 진범 이용우의 ‘얼굴’을 공개하고, 왜 30년간 잡지 못했는지 풀어낸다.

 

비록 그 과정은 허구이지만, 범죄로 삶이 파괴된 사람들의 고통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 강태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여동생과 결혼을 약속한 상대는 용의자로 지목돼 모진 고문을 받다 세상을 떠나고, 강태주는 오히려 가혹행위 가해자로 몰린다. 

 

열악한 수사 환경 속 그의 오판은 무고한 사람을 용의자로 몰아넣기도 한다. 허수아비를 쫓다 도리어 허수아비 신세가 된 경찰과 범죄 희생자·유족, 무고한 피해자까지 일상이 무너지는 모습은 드라마가 배경으로 하는 1980년대 혼란상을 각인시킨다.

 

연출을 맡은 박준우 PD는 “실제 범죄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의 특정 시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뤄준 작품”이라며 “단순히 범인을 잡는 스릴러를 넘어, 30년이란 세월이 당시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싶었다”고 말한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기존 작품은 ‘범인이 누굴까’를 두고 계속 반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지만, 이 작품은 진범을 잡기까지의 과정이 더 궁금해진다”고 평가한다. 김헌식 평론가는 “이춘재가 잡힌 이후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은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 프로그램밖에 없었는데, ‘허수아비’가 극적 재미를 더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전문가들은 ‘허수아비’가 실제 사건을 다룬 장르물로서 유의미한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본다. 김 평론가는 “진범이 잡힌 상황에서 드라마가 접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실제 사건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라며 “이후 이와 유사한 작품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소재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한다.

홍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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