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디의 선택이 만든 기회, KBO를 넘어 메이저리그 FA 시장 주목
나는 그를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2014년 드래프트 1라운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워싱턴 내셔널스의 선택을 받던 에릭 페디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의 현실은 냉혹했고, 그는 결국 논텐더로 방출되는 쓰라린 경험을 맛보았다. 미국 야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듯했던 그가 지금, 태평양 건너 한국의 마운드에서 부활의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창원 NC 파크의 투수 마운드. 그곳에 서 있는 페디의 모습은 워싱턴 시절과는 전혀 달랐다. 자신감 넘치는 눈빛, 정교해진 제구, 그리고 무엇보다 승리에 대한 갈증이 그의 투구 하나하나에 묻어났다.
NC 다이노스의 유니폼을 입은 그는 30경기에서 20승 6패, 평균자책점 2.00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쌓아올렸다.
209개의 탈삼진은 KBO리그 투수들 사이에서 단연 최고였다.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는 물론, WHIP, 피안타율까지 모든 주요 지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외국인 투수 최초로 트리플 크라운의 영광을 안았다.
"한국에서의 경험은 내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시즌 후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사함과 자부심이 공존했다.
한국 야구의 기술적 접근방식과 팬들의 열정은 그에게 야구의 본질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찾지 못했던 자신만의 리듬을 KBO리그에서 발견한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이제 그들이 잊었던 이름을 다시 호명하기 시작했다.
MLB.com은 "페디가 메릴 켈리의 성공 사례를 따를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고, MLB 트레이드 루머스는 그를 "FA 시장의 흥미로운 와일드카드"로 평가했다. 뉴욕포스트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보스턴 레드삭스, LA 다저스 등 명문 구단들이 그의 영입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메이저리그의 선발 투수 시장은 가뭄에 콩 나듯 메말라 있다. 코로나19 이후 투수들의 부상이 증가하고, 구단들은 안정적인 선발 자원 확보에 목말라 있다.
이러한 상황은 페디에게 황금 같은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한때 그를 버렸던 리그가 이제는 그를 갈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창원의 밤, NC 다이노스 팬들은 그의 투구를 보며 열광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알고 있었다. 이 외국인 투수의 성공이 곧 이별의 서막이 될 것임을. 한국 야구는 오랫동안 메이저리그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메릴 켈리, 브록 스튜어트, 그리고 이제 에릭 페디까지. 그들은 한국에서 재탄생하여 본국으로 돌아간다.
페디의 여정은 단순한 스포츠 스토리를 넘어선다.
그것은 실패와 좌절, 그리고 이국땅에서의 재발견과 부활에 관한 인간 드라마다. 그가 다시 밟게 될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한국에서 배운 교훈들이 어떻게 꽃피울지 지켜보는 일은 양국 야구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