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환율 구원투수 역할하며 시장 안정 기여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돌파하며 1500원대 진입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한국은행, 국민연금공단으로 구성된 '4자 협의'를 전격 가동했다.
외환당국은 이 협의체를 통해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연금의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 즉 '국민연금 뉴 프레임워크'를 논의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이 환율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는 국내 외환시장에서 가장 큰 손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투자 비중을 줄이고 해외 투자 비중을 늘리는 장기 전략을 추진 중이며, 해외 투자를 위해 원화를 달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달러 매입 수요가 발생한다.
이는 구조적으로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현재 국민연금 운용자산 1361조2000억원 중 해외주식(508조2000억원)과 해외채권(96조600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44.4%에 달한다.
정부는 해외투자를 막을 수는 없지만, '환헤지'와 한국은행과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특히 환헤지는 사전에 특정 환율을 고정하는 거래로, 예를 들어 환율이 1000원일 때 테슬라 주식에 환헤지로 투자하면 환율 변동과 상관없이 테슬라 주식 상승에 따른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환율이 하락하여 수익률이 상쇄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국민연금이 환헤지 비율을 늘리면 외환시장에는 달러가 풀려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된다. 선물환에서 매도 포지션을 잡거나 실제로 달러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환헤지가 이루어지면서 시장에 달러가 공급되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은 환율 급등 상황마다 국민연금에 환헤지 비율 상향을 요청해왔다. 현재 국민연금은 최대 15%까지 환헤지를 할 수 있는데, 이는 전략적 환헤지(최대 10%)와 전술적 환헤지(플러스마이너스 5%)를 합한 수치다.
전략적 환헤지는 '이례적으로 높은 환율'일 때만 발동될 수 있으며, 환율 정상화(하락)에 대비하기 위한 수단이다. 시장에서는 전략적 환헤지가 1480원 이상, 1400원 후반대에서 발동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지난 1월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헤지에 나서자 환율이 하루 만에 20원 가량 하락하며 1450원을 넘었던 환율이 1350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환헤지 전략이 노후 자금 수익률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국민연금은 2015년 이후 해외 투자의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0%로 유지하며 환율 상승에 따른 수익을 추구했다. 2015년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였을 때 해외 투자 자산 자체의 수익률 외에 환차익으로만 20% 넘는 수익률을 올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할 때만 환헤지를 활용하며,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환율 상승 가능성이 높아 환노출 전략을 유지한다. 하지만 현재 환율 상황이 '일시적 고환율'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전문가들은 1200원대 환율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400원대가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우선시하면서도 외환시장 왜곡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달러 매입 수요로 인해 환율이 구조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만큼, 수익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환헤지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상승할 때마다 국민연금의 투입 여부에 주목하며, 국민 노후 자금의 안전성과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