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전쟁, 부품 권력 판도 뒤바꾸다
애플이 AI 서버용 메모리 부족 현상에 대응하며 중국산 메모리 카드 사용을 검토하는 등 메모리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나타난다.
과거 부품 구매력을 바탕으로 공급망을 주도했던 애플이 AI 시대에 메모리 업체의 영향력 증대에 직면하며 공급망 협상 구도가 변화하는 양상이다.
마이크론은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이 과거 불황기에 메모리 가격을 지나치게 낮춰 공급사들의 투자를 막았다고 반박하며, 현재의 가격 인상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주장에 맞서고 있다.
애플은 팀 쿡 CEO가 메모리와 저장장치 가격 상승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밝히면서 제품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AI 서버용 초고속 메모리(HBM) 수요 증가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용 메모리 공급이 줄어든 틈을 타 메모리 업체들이 가격을 크게 올리자, 애플은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 칩 사용까지 고려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애플은 이미 맥북과 아이패드 등 일부 제품 가격을 수십만 원 가량 올렸으며, 하반기 출시될 아이폰 신제품 가격에도 메모리 비용 상승분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론은 수밋 사다나 CBO가 일부 대형 고객들이 2023년 메모리 불황기 당시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요구했고, 그 결과 공급업체들이 충분한 설비 투자를 하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애플을 겨냥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CEO 또한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과거 메모리 가격 폭락기에 공급사들이 손실을 감수하며 생산과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었고, 이후 AI 수요가 폭발하면서 공급 확대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메흐로트라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2023년에는 메모리 가격이 기존 대비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강조하며, 현재의 가격 상승이 폭리가 아니라 과거 투자 공백과 AI 수요 급증이 만든 시장 정상화라는 점을 부각했다.
이러한 갈등은 미국 정치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이크론은 최근 미국의 아동 장기저축 계좌 제도인 '트럼프 계좌'에 최대 2억 5000만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는 미국 내 반도체 생태계와의 결속을 전면에 내세우는 행보로 해석된다.
마이크론은 미국 내 제조·일자리·미래 인재 투자를 강조하며,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 사용을 타진하는 상황 속에서 정치적 지지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미국 메모리 기업 대 중국 공급망을 활용하려는 빅테크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메모리 가격 전쟁은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애플 외에도 삼성전자,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등 다양한 IT 제조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하고 있으며, 이는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또한, 미국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을 상대로 한 반독점 집단소송도 제기되었다. 소비자들은 메모리 3사가 D램 생산을 조율해 공급을 제한하고, 그 결과 전자제품 가격이 올랐다고 주장하며, 메모리 업체의 담합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사태는 메모리가 다시 전략자산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거 애플은 부품 공급망을 쥐고 흔드는 절대 강자였지만, AI 시대에는 메모리 업체들도 더 이상 낮은 단가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하청업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애플은 중국 칩이라는 위험한 지렛대를 꺼내 들었고, 마이크론은 미국 정치권과 장기계약을 방패로 세우며, IT 업계의 권력 지도가 재편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가 메모리 수요의 우선순위를 바꾸면서 IT 업계의 권력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며, 이번 가격 전쟁이 애플 제품값 인상에 그치지 않고 향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방향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